블라를 대통합 시켜버린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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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오면 가족의 만남은 하나의 이벤트가 된다. 거리가 멀면 며칠간의 이동과 피로를 감수해야 하고, 도착하자마자 식탁을 책임진다는 부담이 서로를 더 예민하게 만든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보며 며느리의 입장을 먼저 떠올린다. 며느리는 장을 보고 음식을 다듬는 과정까지 포함된 노동이 체력을 더 소진시켰다고 느끼고, 시부모가 그 부담을 덜어주지 않는다고 받아들인다. 이때의 해석은 누구의 관점에 서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배경을 들여다보면, 명절은 전통적으로 시댁의 중심 행사로 여겨져 왔다. 시부모가 함께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되지만, 피로가 누적된 며느리에게 그 기대가 더 큰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여기서 필요한 건 의사소통의 방식이다. 짧은 대화로도 '오늘은 우리가 이렇게 공동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합의가 가능하고, 서로의 피로를 확인하는 작은 표현이 관계를 지켜준다. 또한 가사 노동의 분배를 명확히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해석의 여지는 남는다. 시부모가 손을 뗀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의 ‘배려의 방식’이 다를 뿐일 수도 있다. 며느리는 '기대하는 마음'이 실연으로 바뀌는 순간을 느끼고, 시부모는 단순히 체력의 한계나 시간의 제약을 탓하기 어렵다.
이처럼 상황은 개인의 감정과 가족의 역학에 의해 달라진다. 결국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대화와 경계의 재설정이 필요하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듯 천천히 상황을 관찰하고, 앞으로의 명절을 조금 더 부드럽게 채우려는 작은 선택이 시작될 수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누구의 잘못인지보다, 서로의 리듬을 맞추려는 시도에 가깝다. 각자의 에너지를 허투루 소비하지 않는 방향으로, 상황을 공유하고 역할을 조정하는 연습이 필요하다.